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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18. 새벽

새벽수유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보통은 다시 곯아떨어지는데, 창문을 여니 빗소리가 좋아서 잠깐 앉아있다보니 잠이 깨버렸다. 그제와 어제 유난히 젖을 찾고 보채던 녀석은 눈에 띄게 몸이 퉁퉁해지고 얼굴이 커졌다. 연식이 몇십년이 된 우리의 '하루'와 이제 겨우 60일을 넘긴 녀석의 '하루'는 완전히 다른 시간의 개념인 듯하다. 봄이 되면 하루새 활짝 핀 꽃들을 보며 하루라는 게 짧은 시간은 아니구나 했는데, 울집 꼬맹이도 하루동안 열심히 커가고 있다. 그렇지만 보채는 녀석 덕분에 틈틈히 작업실 나가려던 계획은 실현하지 못했다. 시간의 압박...으-

그제가 부부의 날이어서인지 결혼에 관한 통계를 통계청이 발표했다고 한다. 그 중 재미있던 하나는 기혼남녀의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 기혼남녀에게 결혼에 관한 것을 묻자 남자의 79%는 '결혼은 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여자는 65%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고 한다.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30%로 남자들의 17%보다 많았다. 흔히 대중문화 속에서는 여성이 결혼을 원하고 남성이 자유를 위해 결혼을 늦게 하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막상 결혼하면 남자들이 더 편하긴 편한 듯. 가사노동 시간도 여성은 3시간 20분, 남자는 37분이라고 한다. 허허허. 게다가 남편들은 아내의 맞벌이까지 원한다고 하니... 사랑이라는 껍데기를 벗기고 나면 결국 자본을 어떻게 소유하고 노동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결혼의 중요한 문제인 건 분명한 것 같다. 지금 나와 룸메는 함께 모으고 있는 돈이 없고(그냥 모을 돈이라는 게 없다;) 비교적 공평하게 가사노동을 분담한다. 의외로 착한여자 콤플렉스 따위가 있는 나는 가사일에 대한 묘한 책임감을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손님이 온다거나 할 때의 압박감 같은..- 그것에 짓눌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서 그런 압박은 조금 심해지고 있다. 그냥 스치듯 하는 말들도 다 '엄마'에 대한 공격으로 들리고, 요즘 티비 광고에 자주 나오는 '엄마가 최고의 선생님' '엄마는 슈퍼우먼' 등의 말들에도 움찔거리고 만다. 젖을 잘 안 물어도 내 탓, 아이의 신호를 못 알아채도 내 탓, 아파도 내 탓, 엄마라는 존재가 원래 다 그런 것인지, 잘 극복이 안 된다.

이 작업을 하면서, 실제 엄마가 되면서 여러가지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어느 때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기도 한다. 내가 겪는 일들을 이미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비혼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난 그 경계에 있고 싶지만, 내게 무언갈 묻는 게 어렵다는 비혼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미 경계를 훌쩍 넘어서 버린 것도 같다. <두 개의 선>에서 그 경계와, 또 그 경계때문에 소외되거나 서로를 소외시키는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내가, 내 친구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야기들을 잘 들을 준비를 하려면 지금까지 촬영 된 것과 앞으로 촬영할 것들을 잘 챙기고, 관련된 자료들도 꼼꼼히 읽어봐야 하는데, 자꾸 미뤄지고 있다. 짬이 나면 자고 싶고, 눕고만 싶다. 아이가 젖을 먹는 텀은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인데, 그것도 말이 그렇지 한 번 먹이는데 4-50분이 걸리고, 트름시키고 재우고 밥을 먹거나 하면 다시 젖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오는 것이다...영화 같은데 나오는 무한반복의 시간이랄까... 모유수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 쩝.
뭐 천천히 좋아지겠지. 백일의 기적도 있다니까...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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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요즘 정치판이 어떤가! 고뇌하는 정치원로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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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살이 올라 넙대대해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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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어플 가지고 만들어 본 흑인 동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