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in's Diary2010.11.17 18:51
2010년 3월 18일의 일기. 아이는 3월 19일에 만났다.
오래전 입원실에서 아이폰에 끄적여두었던 글인데 조금 고쳐서 다시 올린다.


아침. 점점 일어나는 게 힘이 들었다. 팬티에 약간 핏자국이 보이는 듯 했다. 이게 이슬인건가?

아점으로 동생과 칼국수를 먹었다. 집에서 뭘 해먹은지 오래됐단 생각에 장을 보았다. 시금치와 두부를 사며 내일 아침으로 된장국을 끓여야지 했다.

집에 오니 야옹이가 다리를 절고 있었다. 요 며칠 야옹이랑 수키의 싸움이 장난아니게 심했었는데 어디 부딪힌 건지 뒷다리가 부은 듯 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려니 캐리어도 무겁고 나 혼자는 엄두가 안 나서 낼 룸메랑 데려가기로했다. 야옹이를 안고 잠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이 깨니 나갈 시간이 됐다. 룸메의 희곡으로 연극이 올라가는 첫날이었다. 배가 잠깐씩 아프단 생각이 들었는데 생리통과 비슷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대학로까지 나가는 길, 버스에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데 길이 워낙 구불구불 언덕길이라 힘이 많이 들었다. 앞에 앉아 있는 남자애가 너무 미워서 마구 째려보았다. 물론 신경도 안 쓰지만..

대학로에 가는 길에 약간 불안한 맘에 애기 낳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진통이 어떤 느낌인지 물어봤다. 친구는 일단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이슬이 보이면 보통 3일 안에 아기를 낳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걱정이 좀 됐지만 일단은 공연을 봤다. 애가 계속 발로 차기도 하고 배도 아파서 룸메의 공연만 보고 나왔다. 나와서는 배가 너무 고파서 롤집에 가 롤 한 줄 뚝딱. 대충 시간을 재 보니 제법 규칙적으로 진통이 오는 거 같았다. 간격도 조금씩 줄어들기도 하고.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열시쯤. 병원에 전화를 하니 일단 와보라고 한다. 괜히 불안해 말고 검사받고 편히 쉬자는 생각에 병원에 가기로 결정.
내가 샤워하는 동안 룸메는 혹시 모르니 짐을 챙기자며 책에 나온 입원준비물들을 챙겼다. 약간은 들뜬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설마 오늘 나오기야 하겠어?'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아!!'라며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표정은 상기돼있었다. 유난히 터널이 많은 외곽도로를 타고 가면서, 그 깜깜한 터널에서 셀프 카메라를 찍었다. 리포터마냥 지금 병원에 가는 길입니다, 하고 카메라에 대고 말하는 날 유치하다 비웃는 룸메의 목소리도 담겼다. 병원에 도착하니 밤 열두시쯤 되었다. 분만실은 조용했고 난 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누웠다. 배에 뭔가를 설치하고 측정하더니 진통이 진행중이므로 돌아갈 수 없단다. 헉. 정말 나오는 거야? 아직 한 달이나 예정일이 남았는데?
촬영을 위해 경화에게 전화를 하고 다른 사람도 들어올수 있도록 가족분만실로 옮겼다. 기분이 이상했다. 진통의 주기는 조금씩 짧아졌고 내진과 관장도 진행됐다. 손가락너비로 열린 자궁문의 길이를 확인하는 행위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고통스러웠다. 간호사는 긴장하지 말라고 힘을 풀라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조금씩 입으로 신음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자 진통이 심해졌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빠는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농담을 건넸지만 이미 농담에 웃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엄마는 그 순간 통영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우연히도 엄마의 이삿날이었다. 엄마는 내 신음소리만을 듣다가 이사를 위해 가야했다.) 결국 모두 나가라고 화를 냈다. 혼자 누워 시와의 음악을 들었다. 아프다고 생각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끝없는 마인드 컨트롤. 아프지 않다. 견딜만하다. 나는 견딜 수 있다. 견딜만 하다........다만 잊지는 말자. 다시는 이 경험을 하지 않으리...라며 주문을 외웠다.
새벽 네 시. 간호사가 의사를 부르겠다고 한다. 이제 거의 다 자궁문이 거의 열렸다고. 이미 나는 더 아프든 말든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입에서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는 순간 기절해버릴 것 같은 기분 때문에 계속 목소리를 삼켰다. 으으으- 앙다문 입 밖으로는 짐승의 소리가 새나왔다.
의사 도착. 회음부 절개. 인권분만이라 회음부 절개를 안 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냥 진행한다. 아. 이제 그냥 될대로 돼라의 상태. 그냥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힘을 준다. 후으으후 으후후으 . 지난주에 호흡법을 배웠는데, 똥 누듯이 힘을 주면 된다했다. 끄응- 끄응. 의사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좀더 길게, 좀더 한 방에, 그렇게 해 보란다. 먹은 건 8시에 먹은 김밥이 다인데... 진통이 멈추는 2-3초간 잠이 든다. 그 고통 속에서도 잠이 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3초만에 일어나 다시 끄응- 의사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물론 말은 '아주 잘 하고 계십니다'이지만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간호사가 자연분만이 힘들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산모의 산도가 좁고, 아기는 미숙아라 힘이 없다고.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순 없다. 끄응- 룸메는 옆에서 눈물을 그렁거린다. 몇 번 더 시도하다가 얼굴이 더 어두워진 의사는 간호사 둘을 내 배위에 올리고, 가족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엄청난 힘의 밀어내기. (밖에서 기다리던 룸메는 불투명유리에 비친 그림자와 삐걱거리는 침대소리만 듣고 그들이 나를 해꼬지하고 있다는 상상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결국 분만실 난입하다 쫓겨남 ㅎ) 짜장면 반죽 밀어내듯 내 배를 밀쳐지고 있고, 의사는 손으로 아이 머리를 집으려 애쓰고, 나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힘을 주고. 삼단콤보 30여분만에 나짱 탄생. 마지막 순간은 정말 십년묵은 똥을 싸듯 시원했다. 뭔가 주르륵하고 몸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그 느낌.
아이를 바로 내 품에 안겨준다. 너무, 너무 너무 작았다. 내 심장에 귀를 대고 눕혔는데 외계인 같이 생겼다. 산도에 오래 있었던 탓에 머리가 콘헤드가 되어 나왔다. (룸메는 진지하게 의사쌤에게 저 머리가 평생 가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이가 누워있는 동안 룸메가 탯줄을 자르고, 간호사와 함께 따뜻한 물에 살짝 아기를 씻겼다. 나는 분만 후처치. 따끔따끔한 것이 만만치않게 아프다. 배가 고파 그런건지 수액 때문인지 몸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고.
나는 처치가 끝나고, 속싸개로 싼 아이가 다시 분만실에 왔다. 젖을 물려준다. 태어나자마자 젖을 물려주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고 한다. 룸메는 '반갑다'라고 인사했다. 아이폰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나는 입원실로 아이는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미숙아라서 지켜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저 자고 싶다. 피곤했다. 아주 많이.
 





동영상은 여성영화제 피칭 때, 가지못한 나를 대신해 틀었던 것.
경화가 촬영과 편집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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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 개의 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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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고. 눈물이 난다 야.

    2010.11.22 09: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진짜 옛날 얘기 같은데, 올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해. 올해는 참 금세 지나간 거 같아도 또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

      2010.11.23 23:0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