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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23. 이런저런

작업실에 못 나간지 좀 됐다. 한 텀 정도 고민을 정리했다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져서 인지 촬영횟수도 많이 줄었다.
아마도 이야기는 더 개인적이 될 것 같다.
결혼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것이 나의 트라우마로 얘기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는데, 그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 '될 것 같다'고 확신없이 말하면 안 되는데 그러는 걸 보면 여전히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 제대로 얘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천천히.

촬영한 테잎을 보는 것이 재밌다. 다른 사람이 찍은 걸 보는 것도, 내가 찍은 걸 다시 보는 것도 좋다. 기억이란 참으로 이상해서, 그렇게 '객관적'으로 기록해놓지 않으면 있던 일도 없던 일이 되거나 어느 부분만 자르고 나머지 부분만 이어붙여놓기도 한다. 오래전에 촬영된 화면들에서 그렇게 사라져버린 기억들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 촬영을 하면 일단 한 번은 바로 보고, 그 다음에는 조금 묵혔다가 녹취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거 같다. 특히나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다룰 때는 한번쯤 뒤로 빠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카메라 속 내 모습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 아기를 낳고 집에만 있으면서는 거울을 거의 안 봐서 몰골이 흉측하기 짝이 없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시도는 좋으나, 이 시간의 내가 그런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것도 싫다. 집에 있을 때도 좀 신경을 써야지. 화장까진 못해도 옷이라도 좀 챙겨 입어야겠다. 흠.

요즘 들어 종종 룸메와 싸운다. 싸우는 원인은 늘 하나고, 패턴도 늘 같다. 돈. 돈. 돈.
모유수유와 아기보기 때문에 나는 적극적으로 돈 벌기에 나서기가 어렵다. 게다가 지금까지 하던 일들도 돈이 되는 일들이 아니라서 아기를 누구에게 맡기고 하는 것도 별 소용이 없고. 아기와 함께 살기 전에는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돈이 들어갈 일은 끊이지 않는다. 외식도 줄이고, 옷이나 화장품, 책 같은 나한테 들어가는 돈은 거의 줄였는데도 정말 구멍처럼 돈들이 나가는 거다. 상대적으로 그는 느긋하다. 느긋하다기보다는 뭐랄까, 걱정해서 해결되지 않을 일은 걱정을 안 하는 편이랄까. 나는 좀 걱정을 사서하는 편이고. 그래서 웃으면서 얘길하다가 꼭 눈물로 끝나는 싸움을 하고야 마는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핑계로 타협하지 말자고 얘기했었다. 그도 나도 하고 싶어하는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은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아이 때문에 빛이 바래가는 일을 많이 봐왔기에 그러지 말자고, 나중에라도 아이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자꾸 잊는다. 그에게 많은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채근하거나, 그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권했으니. 당분간은 이 불안함과 후회를 번갈아가며 살 듯.

내일은 강의와 병원. 오랜만에 일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