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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26. 임신출산결정권 네트워크 기자회견에 다녀와서

어제는 임신출산 결정권 네트워크에서 하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 기자회견에 다녀왔다. 잠든 아기를 두고 나오는데 마음이 좀 무거웠다. 앞으로는 더 자주 그럴텐데, 무거운 마음은 무뎌질까, 더 무거워질까.

기자회견은 11시에 청계광장에서 시작했다. 시작할 무렵 비가 와서 부랴부랴 우산을 사들고 왔다. 기자회견이지만, 모인 사람 대부분은 단체의 활동가들인 것 같았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좀 뻘쭘하기도 했다. 경화가 촬영을 하고, 나는 그냥 보았다. 연출자라고 딱히 연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은데, 촬영까지 안 하고 있으니, 에휴.

여성에게 너의 몸은 너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국가, 아이를 낳아도 양육의 몫을 온전히 여성에게 지게하는 사회,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시술로 여성의 건강권을 해치는 '불법'낙태시술, 발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작년 이맘 때. 그 때는 하염없이 눈물만 났었다. 다행히 함께 고민해주던 파트너가 있었지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그 선택의 결과는 고스란히 내 몸에 남겨질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낳기로 했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나는 나에게 정말 선택권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섹스를 하기 시작한 후로, 단 한 순간도 임신의 공포에서 자유로운 날이 없었다. 열심히 피임을 했고, 나름대로 어린 날의 성교육을 잘 받은 편인데도 그랬다. 섹스를 한 다음날부터 그 다음 생리일까지 괜한 걱정에 떨었고, 생리일이 조금이라도 늦거나하면 당장 그 이후의 일들을 생각했다. 애인을 시켜 임신테스트기를 사오게 하면서 면박을 주거나 울었던 적도 여러번. 그 공포가 내 눈에 두 개의 선으로 나타났을 때는 정말 머리가 하얘졌었다. 몇 차례 친구의 낙태수술의 보호자로 병원에 다녀오고, 고민하던 친구에게 낙태를 권한 적도 있다.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었는데도, 몸이 아프고 힘들어야 하는 것은 늘 여성들이었다. 나는 과연 선택을 한 걸까? 낙태를 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주체적인 '가해자'가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출산을 결심했던 게 아닐까. 낙태가 '도피'가 아니라 정말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나의 판단은 또 달랐을 것이다.

임신 기간에 엄마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고, 그 역시 계획된 임신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건 신기하고 기뻤으면서도, 부모님이 받은 충격때문에 엄마는 많이 힘들었다. 낙태를 하러 병원에 찾아갔다가 다시 돌아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딱 한 번 피가 비친 적이 있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유산일까봐 기뻤어. 그러면 모든게 원점으로 돌아가니까,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런 감정들을 아빠도 느꼈을까? 그도 다른 방식으로 괴로운 점들이 있었겠지만 나나, 엄마와 같은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파트너도 마지막 결정은 나에게 하라고 했었다. 그것은 그의 배려였지만, 나는 그 책임마저 온전히 나의 몫이 되는 것 같아 힘들었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 준다. 안쓰럽고, 짠하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이 아이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럴 수 없는 환경이었다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삶이 불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는 구호가 아니라, 좀 더 센 구호를 외칠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사회자의 말이 그저 바람으로 끝나지 않길,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해 사회가 같이 책임져주는 세상이 되길, 그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