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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목이의 하루/엄마의 기록

D+365

드디어 일년이 지나갔다. 돌아보면 엄청 빨리 지나간 거 같은데, 하루하루는 참 길었다. 견딜 수 없게 괴롭고 힘들었던 날들도 있었고,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날들도 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돌봐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시간들이기도 했고.

여하튼, 내일이면 태어난지 꼭 일년이 되는 동목이.
지난 주에 어린이집에서 장염에 걸려 일주일 꼬박 다시 집에서 보냈다. 바이러스성 장염이라 감기가 함께 와서 구토에 설사에 콧물에 열에, 아주 돌치레를 제대로 했다. 그제는 내가 감기가 옮아 함께 고생 중. 엄마와 아이가 함께 돌치레를 한 셈. 다행히도 우리 둘다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이제 동목이는 온 집안을 걷고 기어다니며 탐색하고 있고, 잡히는 모든 걸 입에 넣어보거나 던지거나 찢는 걸 즐기고 있다. 워낙 지저분한 집이라 애가 좀 걱정되긴 하는데, 아직까진 큰 사고 없이 버티는 중. 엄마아빠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 전원을 끄거나 멀티탭 전원 버튼을 오프로 눌러버려서 때때로 화를 돋우기도 하고. 책을 정리해 놓으면 다시 다 꺼내놓고, 빨래를 개어놓으면 다시 다 풀어놓고.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린이집에는 꽤 적응을 잘해서 선생님들이 '이런 애만 있으면 열도 보겠다'고 할 정도. 가서 가만히 다른 아이(주로 형들)들과 선생님들을 관찰하는 것이 주 생활인 것 같다. 어린이집 까페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자기가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양 점잖게 뒤쪽에 앉아있더라. 아직까지 탐색전이어서 그런 건지, 적응을 다 한 뒤에도 그럴지는 아직 의문.

어린이집의 사진을 보면 되게 큰 애 같은 느낌.


여하튼 일 년을 보내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게 실제일까 싶은 의심은 종종 들긴 한다. 이런 '그림'은 정말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아이가 낯설기도 하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 꿈 속에 인셉션되어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더 지나면 익숙해질지 모르겠지만, 이 낯선 기분이 꼭 싫지만은 않다. 아이가 더 자라더라도 이 녀석을 내 소유처럼 느끼질 않길,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성질내질 않길 바라고, 때때로 (좋은 의미로) 낯설게 느낄 수 있었으면.

내일 돌잔치를 하기로 했다. 돌잔치를 할까 말까 고민도 많았는데, 일단 하기로 한 이상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근데 내 믹싱 마감과 기간이 겹치고, 룸메 역시 공연이 4월이고 개강까지 한 터라 뭘 제대로 준비하질 못했다. 하루 전인 오늘에 와서야 작업실에 나와 허덕이며 짧은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영 마음엔 안 든다. 그나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 잘 만들고 싶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다른 돌잔치들을 보니 돌상에 옷에 헤어메이크업에 준비 많이 하던데 우린 모두 패쓰. 무사히 잔치 치르고 집에와서 퍼져 잠이나 잤음 좋겠다.
우리 세 사람, 그리고 아이 함께 돌봐준 엄마와 아빠, 지원이, 촬영하느라 먼 길 오가며 아이도 봐 준 깅, 선물로, 문자로, 전화로 축하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와 위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