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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한국에서 '비혼 부모'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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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비혼 부모'로 산다는 것


이철씨와 지민씨는 좋아서 함께 살지만, 결혼식이나 혼인 서약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제도에서 벗어나 개인을 지키고, 다양하게 함께 살기를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처럼 한국에서 비혼으로 사는 게 가능할까?





여자는 남자가 해를 등지고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에 반했다. 그 남자는 ‘까맣고 성깔 있어 보이는 여자애’랑 함께하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훨씬 재밌어질 것 같았다. 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난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복닥복닥 보통의 연인이 그렇듯 그들 역시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6년째 연애 중’이던 어느 날, 그들은 친구들을 술집으로 불러 모았다. 같이 살기로 한 결심을 선언하는 자리가 꾸려졌다. 굳이 예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을 조촐한 파티였다.

서울 남산 자락에 구한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단출한 방이었다. 대학 시간강사인 남자 이철씨(36)와 영화감독인 여자 지민씨(29)의 시작은 그러했다. 좋아해서 함께 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기로 했다. 지민씨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가족이라는 숭고한 이데올로기가 의심스러웠고, 그 따뜻함 뒤에 숨어서 개인을 억압하는 제도가 못마땅해서였다. 나와 너의 만남과 사랑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만남 속에서 개인은 쉽게 망가졌다. 이혼한 부모를 통해 충분히 ‘학습’되고 ‘검증’받은 일이었다.

지민씨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세상에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살고 싶었다. 그에게 ‘비혼’은 윗세대의 언니들이 그러했듯, 혼인이라는 계약에 대해 정치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박차고 나선 결기 찬 ‘독신 선언’이 아니었다. 제도에 대한 실험이자, 개인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일이었다.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이 사라진 가정

이씨는 그러한 지민씨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존중했다”. 그 탓에 성당에서 세례를 받는 일조차 거절당해야 했다. 제도상 혼인이 아닌 상태로 여자와 살기 때문에 ‘간음의 죄’를 짓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민씨와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그 역시 결혼은 고려해본 적이 없다. 가난한 집의 장남은 ‘보통의 결혼식’에 들어가는 돈을 상상하기 힘들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며, 동생은 장애가 있었다. 삶은 좁았고,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고 ‘사랑’까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이 사라진 두 사람의 생활은 그래서 즐거웠다.

그러나 어느 날, ‘두 개의 선’이 두 사람의 인생에 개입했다.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난 선명한 두 줄, 임신을 알리는 명징한 신호였다. 당황스러웠지만 두 사람은 침착하게 결정을 내렸다. 아이를 낳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의 성을 아이에게 붙여주마고 다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동거를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유난스럽다’ ‘이기적이다’ 같은 의견 뒤에는 “그냥 남들 하는 대로 살아”라는 일종의 강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역시 ‘정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기 힘들었다. 타인의 시선은 늘 집요하게 정답을 요구했다. 그 불안을 극복해나가며 열 달을 보냈다. 이씨는 지민씨와 함께 입덧을 경험하고 젖몸살을 앓았다. 남자는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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