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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09. 실수

토요일에 룸메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룸메가 꼬꼬마때부터 친구인 사람들의 모임이라, 몇 번의 결혼식과 집들이 등을 거친 후 나에게도 이제 익숙한 사람들이 되었다. 목요일쯤이었나, 룸메가 '결혼식때 친구들 좀 찍을까?' 하고 묻기에, '그래, 재밌겠네'하고 대답했고, 새 캠코더를 가방에 넣고 함께 결혼식장에 갔다.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인사를 나누고, 룸메는 쑥스러운 듯 카메라를 들었다놓았다하며 촬영을 했다. 촬영하는 그의 모습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그의 친구들은 카메라가 어색한지 피하거나 경직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다 결혼식 풍경을 몇 장면 스케치하듯 담았는데, 신랑이 나중에 오더니 일부러 비디오는 안 했는데 뭘 이런 걸 찍었냐, 며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의 결혼과는 무관한 촬영이었기에 조금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신랑분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에게 들었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거라던데 자기 결혼식은 넣지 말라고. 룸메는 신경쓰게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불편했을지 모른다며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 참 예의없이 굴었구나 싶었다. 나도 누군가가 아무런 예고없이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싫다. 그런 걸 알면서도 나도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덥썩 카메라부터 들이댄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번 작업을 계획하면서 순간들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를 들었던 것 같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예의를 갖추어 인터뷰 요청을 하고 촬영 협조를 구하면서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 예의도 갖추지 않았다니, 참 부끄러웠다. 거기다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나 때문에 괜히 룸메가 친구들 사이에서 곤란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됐다. 룸메는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며 친구들에게 부끄럽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아무말 없이 카메라를 들이댔으니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불편하게 여겼을까 신경쓰이는 것 같았다. 결국 둘다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우울한 주말 저녁을 마무리했다.
이번 실수를 잘 되새겨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출연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내 주변인들이 그 결심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고 찍고 싶다면 내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먼저 얘기해야 한다. 혹, 어떤 장면이 필요해 즉흥적으로 찍는다고 해도 촬영 이후에라도 어떤 내용을 담고 싶었노라고, 원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꼭 해야 한다. 당연한 것이었는데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 예고 없이 촬영 당한 친구와 가족들에게 나도 내일은 사죄의 마음을 담은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