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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in's Diary

병원

병원은 어쩔 수 없이 (소비자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아이를 낳는 일은 병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병에 걸릴 수 있거나, 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가 있다는 것, 그 아이를 내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산모는 병원에게 훌륭한 '불안한 소비자'이다. 초산이니 큰 병원에도 가보라는 주변의 이야기들에 결국 꽤 큰 여성병원을 찾아갔었다. 7층이나 되는 건물에, 깨끗한 대기실, 대기자 명단을 볼 수 있는 티비에, 뭔가 여러 개의 방으로 분리되어 있는 각 '실'들. 그렇게 눈으로 보이는 '전문성'은 산모가 병원을 신뢰하는데 도움을 주는 듯했다. 아기를 안 낳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곳엔 그렇게 산모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함께 온 남자들도 많았고,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런 병원의 분위기가 오히려 나를 긴장시켜서 나는 시험을 보기 직전처럼 배가 아프고 떨리기도 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엄청 친절했지만, 대형마트에서 만나는 학습된 친절을 불편해하는 나와 룸메로서는 어색하기만 했다. 대화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친절한 기계를 대하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모 영어학원에 가서 친절한 상담과 언니랑 상담하고, 여기서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던 순간과도 비슷했다. (상담 마지막에, 거기에 다니려면 몇백만원이 든다기에 결국 포기했었지만 ㅎ)
이번 주차에는 '꼭' 정밀 초음파를 해야 한다고 해서 정밀초음파를 했다. 뭐 다른 건 아니고 그냥 꼼꼼히 오래 보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기까지 또 여러 단계를 거쳤지만;; 그리고 상담실을 나오니 이제 다음달에는 입체초음파를 해야 한단다. 이날 하루 병원에 가서 '기형'이라는 단어를 수십번은 들은 것 같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래서 블라블라블라... 일단 하라니까 예약은 하고 나왔는데 기분이 찝찝하다. 아기를 볼모로 붙잡힌 채 협상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1층 문을 열고 나오면서 거의 동시에 룸메와 나는 그냥 조산원에서 낳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곳보다는 거기가 나을 것 같다.
여하튼 덕분에 좋은 병원에서 구경 잘 했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