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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02. 압박

촬영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것들이 그냥 흘러가버리기만 하는 거 같아서. 그런데 카메라를 드는 게 너무 힘이 든다. 못난 내 얼굴을 찍기도 싫고 이야기하다가 카메라를 찾으러 가기도 귀찮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아이가 유산되는 꿈을 꾸었다. 생전 만나지도 않던 중학교 친구들과 수영장인지 목욕탕인지 그런데를 갔는데, 내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벗자 내 흰 운동화와 바지에는 피가 가득했다. 다른 친구들이 생리하나봐라고 얘기할 때 나는 혼자 두려움에 떠는, 그런 꿈이었다. 아침에도 기분이 몹시 찝찝했는데, 아침 일찍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잠자리에 들어서는 정일우와 함께 로데오 경기를 하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기획을 할 땐,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들을 토스하면서 얘깃거리를 불려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인 것 같다. 그래서 답답하고, 욕심이 나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오늘부터 데일리로 나의 셀프 촬영을 하기로 결심했는데, 떡진 머리 때문에 그마저도 하기가 싫어진다. 일기 쓰듯 가볍게, 나중에 사용하지 않더라도 해 놓자는 생각인데... 이렇게 하루 이틀 하기 싫다고 미루다보면 영영 안 하게 될 것만 같다.

어서 기획서를 정리하고, 내 상황을 알리고, 조언을 얻고 싶다.
그치만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금세 '이런 거 해서 뭐해, 그냥 조용히 살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후. 펀드도 받지 못한 상태로, 아무런 강제성도 없이, 내가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