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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그 부끄러운 실패를 세상에 내보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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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끄러운 실패를 세상에 내보인다는 것" 
혼인신고한 비혼주의자의 이야기, 다큐 <두 개의 선>






(전략)


유쾌한 승리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민 감독의 고민했던 대로 실패한 이야기, 부끄러운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아이가 겪게 될 차별이 두려워,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싸우며 사는 것이 두려워 결국 혼인신고를 하고 남자의 성을 아이에게 붙였지만, 결국 이렇게 세상에 말을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실패는 아닐 테다. 아직 승리하진 못했다고 해도, 여전히 말을 꺼내고 싸움을 하는 중이니 말이다.
일상을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싸움이 되고 운동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만약 혼인 신고를 거부하고 아이를 혼외 자녀로 등록했거나, 여자의 성을 따르게 했다거나 한다면 훨씬 더 노골적인 싸움이 되었겠지만, 제도가 요구하는 몇 가지 룰을 따랐다고 해서 싸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세상은 그들이 결혼한 것이라 여기고, 그들은 여전히 아니다, 라고 답해야 한다.
철 씨는 “사람들이 다른 범주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 두 사람의 오랜 연애를 지켜보며 옆에서 함께 해 준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려 파티를 열었단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세대인 철 씨의 선배들은 그 파티의 정체를 가늠하지 못했다. 오랜 연애 뒤의 파티, 결혼식이 되어야 마땅할 그 자리에서 지민과 철은 결혼이 아닌 동거를 말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워하던 그 선배들은 결국 그 파티를 일종의 결혼식으로 여기고, 축의금까지 내고 갔다고.

“임신과 육아의 과정에서 이 친구(지민 감독. 지민 씨와 철 씨는 서로를, 그리고 둘의 아이 강이를 종종 ‘이 친구’라고 표현했다.)가 여성주의의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는 철 씨는 “뭐가 결혼이냐?”라고 묻는다. 혼인 신고, 결혼식, 공동 생활―결혼 제도를 거부하는 이들이, 결혼 제가가 가진 속성과 겹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결혼이라 결론짓고 사태를 봉합하려 애쓴다. 그런 가운데 있다가는 “(사회가 부여하는) 역할들에 내가 흡수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철 씨는 고백한다.
“제작 이후에 오히려 고민이 많아졌다”는 지민 감독은 “혼인 신고를 했으니 이제 결혼한 건가, 했지만 오히려 삶에 변화를 일으켰을 것은 결혼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내나 남편의 역할로 굳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가와 처가의 식구가 오가고, 지민 씨는 모유 수유를 하며 아이를 기르고 철 씨는 생업을 하고 있다. ‘굳어버리기’ 딱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철 씨를 놀리듯 자랑하는 지민 씨의 말을 들어보면 걱정을 조금은 놓아도 될 것 같다. “모유 수유를 하는데, 아이가 힘이 있어야 젖을 더 잘 먹는다고 해서 분유도 한동안 같이 먹였어요. 긴 호스를 젖꼭지에 대서 먹이는 거였는데, 하다보면 손가락에 대고도 할 수 있거든요. 이 친구가 이제 자기도 젖을 먹일 수 있게 되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지민이 입덧을 하면 나도 헛구역질을 하고, 젖을 먹이느라 지민의 젖꼭지가 헐면 내 젖꼭지에도 염증이 생겼다”는 철 씨. “아이의 낳을 수 있는 지민의 몸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흥미롭다.
지민 감독은 비혼 운동 이야기를 하며 “비혼에는 ‘주의’를 붙일 수 있지만 결혼에는 안 그렇잖아요, 결혼주의라고는 하지 않죠”라고 말했다. 어쩌면 여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어려움과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일정부분 제도권으로 들어갔지만, 그러니까 비혼주의자였던 이들이 일정부분 ‘결혼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혼에는 주의라는 말을 붙일 수 있고 아직 붙여야 한다는 점 말이다. 혼인 제도를,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 본 비혼주의자들의 이야기 <두 개의 선>, 아직 달콤한 승리를 맛보지 못한 그 이야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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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선 2 lines

2011┃HD┃82min┃Documentary┃color┃16:9┃stereo2012. 02. 09. 개봉!


SYNOPSIS

결혼그거 꼭 해야 해?

 

대학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한 지 10룸메이트이자 연인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민과 철소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그들에게 ‘언제 결혼할거냐’‘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지만그럴 때마다 ‘도대체 결혼은 왜 하는거냐’고 되묻곤 했었다이대로 함께여도 충분히 행복한 생활법과 제도다른 관계들 속에 억지로 포함되고 싶지 않았다이따금씩 아이와 함께인 삶을 상상해보기도 했지만그저 상상일 뿐이었다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여자와 시간강사로 뛰어다니는 남자에게 그것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었다그렇다두 개의 붉고 진한 선을 만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Contact


Twitter. <두 개의 선> 지민 감독 @docu2sun
          시네마 달 @cinemadal

Blog. http://2lines.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