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26. 01:23
열세살때쯤, 일년 사이 키가 부쩍 자랐었다. 18cm정도 키가 자랐다. 늘 1,2번 앞자리를 차지하던 내가 다음학년에는 먼 발치 뒤에 서 있었다. 그 일년은 신기했다. 조금씩 키가 자라는 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면 세면대의 높이가 달라져있었다. 어제까지 내게 익숙했던 눈높이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세면대는 낮아지고, 냉장고의 조금더 위까지 볼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던 가족들도 벽에다 볼펜으로 눈금표시를 해가며 키를 재자 신기하다며 믿어주었다. 어느날 갑자기 1-2cm씩 그렇게 자랐다.
아이를 갖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아무 변화도 없는듯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변화가 느껴진다. 아이들도 계단식 성장을 하는 건가?
어제부터 배땡김이 심해지더니 오늘은 배가 좀 나온 듯하다. 원래 내 배는 비계때문에 나와있었지만, 그 느낌과 약간 다르다. 뭐 그냥 느낌일수도 있고.

임신호르몬은 점점 내 몸을 지배하는 기분이다. 눈물이 주체가 안 되고, 시도때도 없이 흘러나온다. 오늘은 대학가요제 시상 장면을 보다가 울어버렸다. 예전에도 누가 상 받거나 커튼콜을 할 때 박수소리가 막 들리면 울컥하는 감정이 있긴 했는데, 오늘은 정말 엉엉 울었다. 말하다가 감정 때문에 우는 경우도 많지 않았는데 요 며칠 그런 일들이 있었다. 남부끄럽게스리. 호르몬이 인간을 이렇게 지배한다면, 나라는 인간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흠.

낮잠을 자는데, 내가 먹던 돈까스 + 장어구이를 어떤 할머니가 훔쳐 먹으면서 달아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도 너무 분했다. 먹을 것에 대한 집착도 날로 높아지는 듯.
입덧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음식집착도 사라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