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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37. 편집 시간

촬영본을 들여다보고, 추려내고, 어떤 것과 어떤 것을 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끔 동료들과 하는 이야기.
3일이면 될 거 같아,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일주일,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고.
머릿속으로는 금세 진행될 것 같은데도, 현실의 물리적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나도 머릿속으로는 몇 번 편집을 끝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주 더디게 타임라인에 컷이 올라온다.

며칠 전에는 배급일을 하는 모님을 만나 맥주를 마시며 데이트를 했다. 사적(?)으로는 처음 만난데다가 둘이 만난 것도 처음이었고, 사실 대화를 해 본 적도 별로 없었는데, 이번 작업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풀어놓았다. 알고보니 나보다 나이도 어렸는데, 나는 선배한테 굴듯이 칭얼거렸던 것 같다. 고맙게도 한참 이야기하니 조금 시원했다.
고민이랍시고 얘기하고 나면, 많은 경우에 그에 대한 답을 이미 내가 알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 이야기에 자신감이 없는 것.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큰 문제. '영화를 보고 나서 좋든 나쁘든 일단 이런 얘기를 누군가 한다는 것은 저에게 유의미해요!'라고 말해준 그녀에게 깊은 감사를.

석고 조각을 생각해,
집을 나설 때마다 룸메가 내게 하는 말이다.
일단 큰 덩어리, 큰 틀을 짜야 디테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일단 툭툭, 아주 거칠게 컷들을 붙이고 있다.
어떤 녀석들은 운 좋게 발견되기도 하지만,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은 내가 그냥 흘려보내는 컷들도 많을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큰 덩어리를 만들고 곧 다시 찾으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