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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44. 마무리

이제 정말 막바지 작업이다. 같이 작업실을 쓰는 친구는 마지막이라는 말만 몇 번을 들은 것 같다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를 매번 묻긴하지만, 이번엔 정말이다.(양치기 소년 버전?)
내일이면 사운드 믹싱에 들어간다. 사운드가 확정되면 일단 컷 편집은 끝난 셈이다. 다시 믹싱을 하지 않는한 수정이 힘들고, 지금은 재수정을 할만한 시간이 없다. 상영일자가 나왔고, 사운드 믹싱이 끝나더라도 마지막 화면 수정과 영문 자막 작업을 해야 하니 시간은 빠듯하다. 진작에 작업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도 한참 걸리는 모양이니 나도 서둘러야 한다.

오늘 아침까지 마지막 내레이션 수정을 했다. 너무 많이 봐서인지 모든 게 너무 과잉 같아서 갑자기 다 빼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막판에 내레이션의 많은 부분을 줄였고, 후반부 분위기를 조금 바꿨다. 지금까지는 중간중간 모니터링 해준 분들 덕분에 내가 놓친 것들을 잡으면서 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나를 믿고 가야한다. 그 말을 몇 번씩 되뇌이고 있다. 나를 믿자, 믿어보자.

지난 목요일에 <블랙 스완>을 보았다. 구성안이 잘 안 풀리기도 하고, 잠깐 환기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조조영화로 보러 갔다. 트위터에서 '힘든 영화'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서 잠깐 망설이다가 (랭보를 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ㅎㅎ) 자극을 받겠단 마음으로 봤는데, 결과적으론 너무 큰 자극을 받아버렸다.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물론 잘 만들었다) 예술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극을 받았다. 나는 너무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건 아닌가, 그저 적당한 선을 찾으려고 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와서 구성안을 보는데,,, 후, 좀 부끄러웠다.
다큐멘터리의 대상으로서의 '나'와 이 작업을 연출하려는 '나'는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물론 그게 가능하지 않은 걸 수도 있다. 어차피 둘다 나니까. 하지만 내가 나를 대상으로 삼아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시작했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걸 놓치지는 말았어야 했다. 상황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아이가 아팠던 걸로 쇼크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 그걸 그냥 보여주는 것이 맞다. 포장하고,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이야기로. 출연자인 나는 연출자인 나를 삼켜 영화에 대한 비판보다 삶에 대한 비난을 더 두렵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쩌겠나.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이 고민들을 놓지 않고 마지막 편집에 넣으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여성영화제가 끝나면 다시 편집을 할까? 흠. 그건 잘 모르겠다. 더 할만한 여력이 남지 않은 듯한 기분, 돈이 없는 것도 큰 이유.

관객들을 만날 때 당당하면 좋겠다. 모니터링을 부탁한 친구가 보내준 메일에는, 네가 관객 이외에 가장 신경쓰는 존재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담겨있었다. 그들을 죽도록 설득시키거나 없는 것처럼 뻔뻔해지라는 이야기도 함께. 여전히 두렵고 움츠러들긴해도 변명하거나 이해를 구걸하고 싶진 않다. 당당해져야지.

드디어 파일 출력 성공!
자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