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목이의 하루/아빠의 기록

가벼운 자극들이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1.
몇 주 전에 한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선배는 안보와 관련한 국가 기관에 근무하고 있다. 안부를 묻는 짧은 인사를 주고 받고, 함 놀러 오라는 얘기, 그 후 선배는 물었다. "OO이 알지? 걔하고 연락되냐?"

2008년 촛불 이후 수배됐던 사람들이 있다. 그 중 단 한 명만이 지금까지 잡히질 않고 있다. 얼마전 한겨레에서 인터뷰를 했던데 희한한 일이다. 국가 기관에서도 찾지 못하는 사람을 신문사에서는 접선할 수 있으니.

선배가 물은 건 이 친구와 관련한 것이었다. 대학 동기이기는 하지만서도 연락하며 지낸 적도 없을 뿐더러 그의 정치적 활동의 성격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나로선 의외의 전화였다.

선배는 행여라도 연락이 닿는다면 설득하라고 했다. "수배자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수배 생활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가족도 있을 텐데."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그런 선택을 하고 지내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생활을 해야지 무슨 소리냐며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다. 하긴 선배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불법을 저지르지 말라는 충고를 했었다.

2.
며칠 전 모임에서 합평을 했던 작품 중에 브레히트의 시가 인용돼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3.
엊그제 의외의 책이 눈에 들어와 집어들었다. 뭔가 가볍게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배우 장진영의 남편이 쓴 수기였다. 들춰 보던 중 그녀의 암투병을 지켜보던 그의 마음 상태에 동화되고 말았다.
7년 전 기억이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덧)
선배의 전화는 '개인적인 연락'과 '공식적인 수사활동' 사이 어디쯤에 놓일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수배생활 중인 그 사람은 국가 기관의 수사와 재판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시 수배됐던 사람들이 도망치다 잡힌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 정부에게 촛불은 공안 사건이었다! 상징적 수사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였음을 그날 실감할 수 있었다. 정부에 대한 성토를 공안 사건으로 직결시키는 정권이라니, '짐이 곧 국가'인게지.

불법을 저지르지 말라는, 선배의 충고에 가볍게 대꾸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려고요."
선배는 치고 들어오듯 말했다. "그거 하는 사람은 저 위에 따로 있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