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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목이의 하루/아빠의 기록

생후 5주

아이의 아호(兒號)를 '동목(東木)이라 지었다. 아이의 것으로 잠시 고민했던 이름이다. 지민이를 비롯 주변 사람들이 농담처럼 받아 넘기긴 했으나 난 구수한 어감이 마음에 들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on Eastwood)의 이름을 따 만든 것이었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자세히 모르나, 올해 한국 나이로 여든인 그의 모습이 참 좋다. 그는 요 몇 년 동안 일년에 두 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영화마다 그 속에서 다루는 대상과 문제의식이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그걸 다루는 방식에서 치열하고 균형 잡혀 있다. 그래서 그는 참으로 작가답다. 끊임없이 작업에 열정적이면서 깊이 있게, 그리고 조용히 이야기에 파고든다. 이런 삶의 자세를 닮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5주차 생에 접어든 동목이는 무서울 정도로 먹어대기 시작했고 괴로울 정도로 칭얼거렸다. 아무리 얼러도 잠들지 못했다. 변화의 폭이 너무 컸다. 육아 관련 서적에서는 이 시기를 급성장기라고 설명했다. 급성장을 하는 만큼 아이 또한 괴롭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책에서의 설명으로 아이가 보이는 모습을 이해했다. 그러나 지민은 걱정스러웠나 보다. 결국 토요일에 아이의 변이 곱똥이라며 소아과를 찾아 가고 말았다. 변에 점성이 높은 코 같은 것들이 섞여 있기는 했다. 아이의 변이 묻은 기저기도 챙겼다. 소아과에선 몇 가지를 묻더니 장염일리는 없다며 걱정 말라 했다. 장 내의 점액질이 빠져나온 것일 거라 했으나 그 이유에 대해선 설명이 없었다.


한 주간 참 힘들었다. 아이는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끊임없이 울어댔다. 지민은 세 시간만 연속으로 자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헌데 오늘 그렇게 칭얼거리던 아이는 갑자기 천사 아기로 돌아왔다. 잠이 들지 않은 채로 자리에 누워 있으면서도 울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를 주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고요히 세상을 살피는 듯한 표정이었다. 배고픔에 잠에서 깼을 때도 조용히 신호를 보내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을 뜨자마자 자지러지게 울어댔는데 말이다.

신생아용 아기띠가 있다. 아기띠에다가 아이의 몸을 감싸고 신생아의 목을 받쳐주고 보호해 줄 포대기 같은 것을 옵션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지난 주 잠들기 어려워하는 아기를 재우는 데에 이 아기띠가 특효가 있음을 발견했다. 내달 쯤 아이를 데리고 산책나갈 때 사용하려 했는데 아이를 재우기 위해 안고 있는 게 너무 힘들어 사용하게 됐다. 여태까지 샀던 물건들 중 나에게 이렇게 큰 만족감을 준 상품은 없었다. 지금도 동목이는 아기띠 안에서 자고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상품이냐. 아이를 빨리 재울 수 있으면서 다른 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EBS에서 만든 '아기 성장보고서'란게 있다. 그 책에서 말하길 신생아는 고통을 느낀단다. 아이가 수술을 받은 병원에선 달리 말했었다. 수술실로 향하기 전 눈물이 그렁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나에게 의사는, 막 태어난 아기는 인지능력이 없어 고통을 느낄 수 없으니, 또 수술은 잘 될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 했다. 그래서 아기가 수술을 받는 동안,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마취에서 깨어나 스스로의 호흡을 회복하는 동안, 그곳에서 수액과 영양제 주사를 꼽고, 각종 기계를 달고 있었던  열사흘 동안, 그 풍경은 너무나 괴로운 것이었지만 난 아이를 보며 아이에겐 없을 고통을 내 머리로 만들어 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네질 않았다. 엊그제 신생아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주장을 논박한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가슴 아프도록 미안했다. 그때 난 위로해야 했고 응원해야 했고 고통과 외로움과 충격을 씻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약속했어야 했다.

팔의 움직임은 여전히 의도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간혹 의도한 동작도 있는 듯하다. 자다가 자기 팔의 움직임에 놀라 깨는 일은 거의 없어진 듯하다. 시선 또한 무언갈 포착하진 못하지만 간혹 세상을 주의 깊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짧게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여전히 고개를 가누지 못하지만 어깨로 안았을 때 머리부터 배까지 일으켜 세우기도 하며 머리가 뒤로 젖혀지지 않도록 버티기도 한다. 다리를 뻗는 힘이 좋아졌고 근육도 만져진다. 이마에 있던 털들이 빠져서인지 눈썹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살이 붙어서 갸름하던 얼굴이 나부죽해졌다. 오늘로 3.5킬로그램이 됐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