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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43. 이상한 하루

파일 렌더링 중.
뭐라도 적으려면 이런 잉여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의 가편을 했고, 조금 수정을 했고, 이제 영어번역을 위해 파일을 뽑고 있다. 한번쯤 가편시사를 더 하고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상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고 말하고 싶은데 아쉬운 게 아직 많다. 그리고 여전히 관객들이 무섭다. 친구에게는 '감독이라도 자기 작품을 최고로 여기고 아껴줘야 해'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더 많다. 내가 원했던 대로 살지 못했다는 자책과 아쉬움, 그리고 그것들이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법한 장면들을 내 보이는 것이...

오늘은 룸메와 싸웠다.
그도 4월에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될만한 작품이고, 그만큼 애쓰고 싶어하는 걸 안다. 지금의 내가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돈도 벌러 다녀야 한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 없는 시간을 나눠써야 하고, 그래서 때때로 이렇게 부딪힌다. 오늘은  그가 한 말에 상처를 받았다. 그가 말을 심하게 해서라기보다 내가 자책하고 있던 것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싸우고 착찹한 맘에 작업실에 와보니 렌더링 걸어놓은 파일은 뻑이 나있고....
3월부터 동목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편집작업을 시작하려던 11월부터 보내려고 했는데, 그 땐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었다. 그 때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 이제야 등록됐고, 오늘 새학기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다. 낯을 별로 가리지 않는 녀석은 영아반 담당 선생님이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고, 멍하니 엄마들 틈 사이에서 설명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울고 떼 쓰는 아이들과 그를 달래느라 정신없는 엄마들 사이에서 꿋꿋이 영어 동요를 부르며 율동을 하던 음악 강사의 얼굴과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래는 너무 길었고 그녀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일기를 쓰던 것도 108배를 하던 것도 못하고 있다.
19일에는 아이 돌잔치를 하기로 했는데, 그 역시 아무 준비도 못하고 있다.
4월이 지나면 정말 여유가 생길까?
옹졸한 마음들도 같이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일단 무사히 3월을 보낼 수 있길. 그러고보니 벌써 3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