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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10. 기획서 쓰기

9월에 처음 쓴 '두 개의 선'의 기획서. 기획서랄것도 없고 그냥 하고 싶다는 이야기만 적힌 에이포 한 장짜리.
그런데 3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별다른 발전이 없다. 그 사이 고민도 많이 하고 이리저리 나름의 구성, 구상을 해 봤는데. 비슷한 고민들은 맴돌고, 계속 움츠러들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코멘트도 해주고 응원도 해주고 하지만 그게 때로는 독이 되고 상처가 되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말이다. 멈춰있는 나에게 짜증도 나고, 안 하면 그만이지 뭐 하는 변명도 하고.

기획서를 쓰려고 오래된 기획의도를 읽어보았다.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고 생각했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니까. 조금 살을 붙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몇 시간을 컴퓨터를 붙들고 있어도 잘 되지는 않았다.

오늘 '시네마 여인네'의 상영회에 갔었다. '시네마여인네'는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의 영상소모임으로, 나와 깅, 혜미언니가 같이 교육을 했던 곳이다. 올해는 깅상이 혼자 짐을 짊어지고 시네마여인네의 4기를 진행했다. 작품이 4개가 나왔고, 오늘이 그 4개의 작품을 보는 날.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들 시간이 없고, 짧은 시간 안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그냥 서로 얼굴보고 웃으며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영화들을 보다가 살짝 눈물이 났다. '소통'이라는 단어를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참 많이 사용했었는데, 그 '소통'의 느낌이 들었다. 얼굴보고 이야기하기에는 쑥스러운 이야기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전달되는 것. 그 힘이 느껴졌다. 나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별 거 아니더라도, 내가 이런 시간들을 겪어왔어요, 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기억났다.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그렇게 많이 이야기했었는데 말이다.

기획서를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싶었는지 명쾌하게 적지 못한다, 아직은.
한 줄씩 한 줄씩, 천천히 추가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또 다시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