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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11. 프리뷰는 미리미리

여차저차해서 새 작업실이 생겼다. 그림 그리는 친구가 작업실이 필요해서 구하던 차에 거리, 공간, 돈 등이 맞아서 같이 작업실을 쓸 수 있게 됐다. 룸메가 만들어준 예쁜 방도 좋았지만, 집에서 뭘 하는 것은 나 같은 의지박약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먼 곳까지 움직이기 힘든 날 배려하여 우리집 5분 거리에 작업실을 구했고, 덕분에 몇 시간이라도 매일 출퇴근을 할 수 있다. 친구가 보증금을 내고 나는 월세를 조금 내는데 처음엔 '우리 형편에 월세로 돈을 더 나가게 하다니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벌면 되지 뭐, 라는 마음으로 나오고 있다. 어떻게든 '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고..
여하튼 작업실에 나오니 미뤄두었던 일을 하게 된다. 찍어둔 테잎을 보고, 파일들을 정리하고, 기획서를 다시 써 보는 것들.
불과 몇 달 전에 찍은 테잎인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 다큐제작교육을 할 때마다 프리뷰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얘기해놓고, 내 자신이 부끄럽다. ㅎ 촬영은 여름부터 시작되었고, 여름의 나는 지금보다 머리카락도 짧고 더 통통하다. 카메라를 너무 의식하고 있는 내 자신이 보이기 때문에 프리뷰하는 내 자신은 조금 짜증이 나 있다....;; 왜 저러니 쟤...

여하튼 작업실 생긴 기념으로 <두 개의 선> 작업의 중간 평가를 하자면.
-테잎으로 촬영한 것과 테잎리스 카메라로 촬영한 파일이 섞여있어서 이것들을 분류하고 보관하는 방식을 만드는 것도 며칠이 걸렸다. 미루지 않고 그 때 그 때 했다면 좋았을 것을.
- 촬영을 하기 전에 '관계'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 내가 찍거나 그냥 그 때 같이 있는 누군가가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쭉 팔로우하면서 찍을 수 있는 촬영감독이 필요하다. 촬영감독이 오면 그 분위기가 깨질까, 자연스럽지 않을까해서 그냥 그 공간에서 가능한 사람이 촬영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화면의 집중도도 너무 떨어지고, 분위기도 자연스럽지 않다. 누가 들든 카메라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 기획에 대해 잘 이해하고 화면을 고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훨씬 낫겠다. 근데 그게 현실적으로 지금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판단도 다시 해 봐야겠지만.
- 어찌됐든 현재의 주인공은 나와 룸메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변사람들도 조금 등장해야 할 거다. 그런데 나와 룸메는 카메라에 너무 방어적이거나 가식적이다. 이 문제를 어찌 탈피할 것인가!
- 우리의 캐릭터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화면이 없다. 상황 설명하는 컷들만 있다. 기획서에 주인공을 매력적인 인물로 설명해야 하는데.............. 매력적이지가 않아!!!!!!! 이건 정말 빅 프로블럼이다...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