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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목이의 하루/엄마의 기록

D-100

새해 첫 날,
공교롭게도 아기가 나올 거라는 예정일 날짜에 딱 백일이 남은 날이기도 하다. 뭔가 대단하고 시끌벅적하게 보내야 할 것 같았지만, 늦잠을 자고 떡국을 끓여먹고 낮잠을 자고 대청소를 하고 저녁을 먹고 만두를 빚었다. 만두는 썩 맛있게 되지는 않았지만, 룸메와 나란히 앉아서 만두를 빚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아이가 생긴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절망했었다. 많은 것들이 두렵고 무서웠다. 잠시라도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을 원망했다. 불행한 미래에 관한 화면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아이를 가졌다는 현실감은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시간이 걸렸고 자주 울기도 했지만 4개월쯤 지나자 모든 상황에 익숙해졌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할때도 더이상 울지 않고, 아이의 태동을 기다리게 되었고, 가끔 배를 토닥이며 대화를 해 보기도 했다. 입덧이 가시고는 먹는 것도 한결 나아졌고, 술을 못 먹는 건 힘들지만 살이 빠져서 나름대로 즐거웠다.
이제 7개월, 백일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나의 몸에서 나와 자기의 삶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까칠하고 삐뚤어진 성미를 가졌지만 사실 꽤나 낙천적이고 희망적인 인간이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별로 없어도 막연하게나마 그 아이의 삶이 행복할 것 같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 이런 가혹한 세상에서 행복을 꿈꾸는 건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나의 연인도, 우리의 아이도 분명 행복할 거라 믿는다.
올해는 다른 어떤 해와도 다른 해가 될 것이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한편으로 많은 상처를 입기도 하고 또 그만큼 행복한 기운들이 가득하길 바라며,
남은 백일도 꿋꿋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