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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기

14. 또 기획서 쓰기

새벽. 마감 하루 전이라는 압박은, 그사세의 윤영이 했던 말처럼, '짜증이 머리끝까지 삐쭉 솟는게 간만에 일하는 기분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 며칠 붙들고 있어도 한 줄도 진도가 안나가던 기획서가 제법 채워져가고 있다. 제작지원공모에 지원하는 것은 꼭 그 지원금을 받겠다는 마음보다는(물론 그 마음도 있다!! 있다!! 있다구!! ㅠ) 그 마감을 핑계로 내가 하려는 작업을 한 번 돌아보고 정리하려는 마음이 더 크다. 이런 얘기를 누군가 필요한 이야기라고 해 줬으면 하는 바람도, 물론 있다.
나를 드러내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 처음이다. 자기방어적이고 검열이 심한 내가 카메라 앞에서 내 사생활을 까발리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기획안을 쓰는 것도 구성안을 쓰는 것도 다른 작업에 비해 더 어렵다.
반이다 친구들이 집에 와 있다. 시간이 괜찮으면 기획서 작업을 도와줘, 라고 최대한 쿨하게(ㅋㅋ) 문자를 보냈는데 이 환란의 시기에 고맙게도 1박 2일의 일정으로 도와주러 왔다. 둘다 거실에 앉아서 넷북을 하나씩 앞에 두고 열심히 쓰고 있다. 내가 마음은 따스하지만(응?) 겉모습은 살아보지도 않은 경상도 스타일이라 고맙다고 제대로 말도 못했다. 밥 한끼 더 사야겠네 ㅎ
구성안을 쓰는데 한없이 늘어진다. 출산 이후를 적으려고 하니 머리가 멍해지기도 한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잘 견뎌내길 바랄 뿐. 이 작업이 그 기간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길, 함께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