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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목이의 하루/아빠의 기록

'문밖'에 올린 글



아이 이름은 '강'입니다


1.
편안하다는 의미의 '康'으로 지어 주었습니다.
성씨는 제 성씨를 붙였습니다.

지난 겨울, 시흥의 한 술집에서 훈훈한 술잔 기울이며
몇몇 형들에게 성씨에 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엄마 성씨를 줄 생각이란 얘기였습니다.
결국 실없는 소리 한 셈이 되었습니다.

오늘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봤습니다.
'이강'.
애초에 가졌던 생각, 그리고 지금의 결과 사이에 보이는 차이를 받아 안아야 했습니다.
결국 진 거지요.
누구에게 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입니다.

2.
아이의 병명은 '선천성 장 회전 이상'입니다.
태아의 장은 밖에 나와있다가 12주차에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고 합니다.
헌데 강이는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거지요.
장끼리 서로 얽혀 혈액 순환이 안돼 괴사가 동반되는 증상입니다.
다행이 일찍 발견되어 장이 괴사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만
응급 중에서도 초응급 수술이 필요한 증상이라더군요.
수술은 개복입니다.

엿새된 아이를 전신 마취를 시켜 인공호흡기를 달고 배를 가른다는 것에서
저와 애 엄마(지민)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술이 잘 됐다는 말을 듣고도
마취에서 깰 때까지, 또 인공호흡기를 뗄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먹은 것을 게워내지 않을 때까지 또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며칠 간 특히 지민인 깊고 얕은 패닉 상태를 오고 갔습니다.

전 예전에 제 어머니 일도 있고, 제 동생의 일도 있고 해서
더러운 운명 같은 것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지민인 아이가 아픈 것을, 자신이 큰 잘못을 한 탓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큰 잘못의 실체를 평범하게 살지 않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우리가 평범하게 살질 않아서 애가 그렇게 아픈가 봐.”

아이가 아픈 이유를 우리의 잘못에서 찾지 말자고 했습니다만
사람 생각이 그렇게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참.
옛날부터 가난, 질병, 장애 같은 불행의 원인을
자신의 ‘죄’와 연결짓는 태도가 있어왔으니까요.
지금도 그걸 조장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요.
그것도 제도적으로.

3.
아시다시피 저흰 혼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지민인 결혼제도에 비판적인 태도가 있었고,
전 그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존중하려 했습니다.
지난 여름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하나 같이 ‘결혼해야지’라며 조언해 주었고
지민인 그러한 반응에 어떤 의심을 품었고
결혼제도를 둘러싼 사회구조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적령기를 기준으로 ‘결혼/미혼=정상/비정상’ 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음은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지민인 그것의 구체적인 실체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 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가진 우리를 중심으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갈 생각을 했던 거지요.
결혼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삼자면 우린 아주 비정상적인 상태이기도 했으니까요.
제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전 성당을 나가기 시작했고 세례를 받겠다고 교육을 받았으나
제도상 혼인이 아닌 상태로 여자와 살기 때문에 ‘간음의 죄’를 짓고 있어
세례를 받을 수 없었던.

4.
아이의 아픔이라는 불행.
이것이 멈추게 했습니다. 남자의 성씨를 중심으로 거대한 가족 공동체가 구성되는 시스템을 따르려 하지 않았던 선택을 말입니다.
시스템 속에서의 관계의 위계로 부여된 자격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따르지 않으려는 선택을 말입니다.
그렇게 규정되지 않고도 작은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었으나
스스로 갖게 된 두려움에 지고 말았습니다.

여러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사생아나 유복자로 키울 거냐?”
“혼인신고나 아이 성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라.”
“커가면서 아이가 매번 그 사실을 설명하는 게 얼마나 괴롭겠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문제있는 집안의 아이로 보일 게 분명해.”
“성씨가 아니면 네가 아빠인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어.”
모두 옳은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현실인 건 분명하고요.
하지만 이 말들 속에는 잔인한 편견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혼인제도라는 것. 평범하게 봤을 때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되진 말아야겠지요.

5.
선천성 이상아에 대한 의료지원제도가 있습니다.
지원 대상은 혼인신고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가족이어야 합니다.
이 또한 혼인신고를 서두르게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제도적 지원들이 혼인제도와 호적 등에 근거한 가족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6.
변명이 길어졌습니다.
결국 아이에게 엄마의 성씨를 주지 못했습니다.
내지른 말을 주어 담지는 못하니 이렇게라도 행동의 결과와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립니다.

7.
다큐는, 그래도 제작하려 합니다.
좋은 일도 있었고요.
내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까지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제목은 '두 개의 선'입니다.
임신테스터기가 임신을 알리는 신호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이 제목으로
결혼과 비혼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두 개의 시선,
부모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이라는 두 개의 갈등선으로 의미를 확장시키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