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작일기

06. 작업실

오늘 작업실에서 짐을 뺐다. 반이다 2년, 슈아랑 작업실 처음 구하던 때부터 하면 5년, 그 기간 동안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도 유지하고 있던 '작업실' 공간과 안녕. 짐을 막 빼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차에 짐을 싣고 나니 괜히 마음이 시큰했다. 처음 작업실이 생겨서 출퇴근을 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나는 또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 걸까. 5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짐은 별로 되지 않았다. 두고 온 것들이 더 많아서일거다. 두고 온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좋게, 예쁘게 쓰였으면 좋겠다.
이제 이 방을 작업실로 만들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골방. 룸메가 붙여준 예쁜 벽지가 있는 방. 오늘 작업실에서 싣고 온 물건이 한 가득인 이 방.

가끔 아이가 핑계가 되는 것이 무섭기도 하다.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작업실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일도 지금보다 더 많이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도 다니고 나보다 더 힘든 일도 많이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또 주눅이 든다. 유약한 인간이 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요며칠 약간 무리했더니 배가 계속 뭉친다. 땡기는 것도 심해지고, 허리통증도 심해져서 내일부터 이틀간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방을 좀 이쁘게 치워야지. 이렇게 저렇게 일할 궁리도 해 보고. 오늘 빈집에서 있었던 개청춘 상영에서, 임신 소식을 듣고 박수를 쳐 주던 사람들이 살짝 고마웠다. 나짱도 신나서 발길질을 해 대는 것 같았다. 임신 초반에 내가 걱정했던 많은 일들은 사실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 내가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일수도 있고, 내 생각보다 세상이 내게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꾸준하고 차분하게 기록을 해 두어야지. 기록에 대한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