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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목이의 하루/엄마의 기록

나 임신했어요

오늘 일하던 곳에서 몇몇 사람들에게 임신 소식을 전했다. 대체로 놀란 다음, 약간 걱정하다가,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왕 낳을 거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었군. 웃으면서 즐겁게 임신 소식을 전하기까지 5개월이나 걸리다니. 모든 것에 더디 익숙해지는 나다운 행동이다.

사람들과 웃으면서 임신 얘기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혼자서 길을 걷다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게 정말 일어난 일일까? 여기에 정말 뭐가 있을까?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뭔가 실감이 안 난다고나 할까. 혼자 가만히 걸어갈때마다 현실감이 떨어진 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한다. 세상에 어떤 일이 그리 준비하고 닥치겠냐마는..
처음 임신하고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나는 내 몸이 임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그렇게 두려워서 열심히 피임을 하고, 수시로 테스터를 해 봤으면서도, 그게 실제로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그게 약간은 신기했고, 많이 이상했다. 내 몸의 변화를 내가 모른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것들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 속상했다. 누군가에게 편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두어달 동안은 입덧의 울렁거림보다 마음의 흔들림이 심했던 것 같다.
이제 익숙함이 도를 지나쳐, 꿈 속에서도 항상 임신을 하고 있다. ㅋㅋ 그게 너무 웃기다. 가끔씩 연애하는 꿈을 꾸는데, 요즘에는 누군가와 연애하는 꿈을 꾸면 내가 임신한 걸 그 사람이 알게 될 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ㅎㅎ 지난 번에는 그냥 알고 지내던 모 감독님과 결혼하는 꿈을 꾸었는데, 결혼 날짜랑 출산일을 비교하면서 임신을 들킬까봐 걱정했고, 그제는 어떤 여자와 섹스할 뻔한 꿈을 꾸었는데 그 여자가 손으로 내 배를 누르니까 내가 거긴 안 돼요! 라며 소리를 지르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그 때 룸메가 다리 같은 걸 내 배에 걸친 게 아닌가 싶다.) 꿈 속에서조차 임신에서 헤어나지 못하다니... 꿈에서라도 자유연애가 하고 싶어라.
이제 가끔씩 나짱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대화라고 하기에는 대답이 없긴 하지만, 말을 걸어보는 것이 재미있다. 부푼 배 어디에 그 녀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식물을 만지며 대화를 시도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지만- 조금 정이 들어가는 것 같다. 달리 태교라고 하고 있는 건 없는데, 괜찮겠지?

이제 다음주면 20주차가 된다.
절반을 넘어왔다, 고 쓰려고 했는데- 출산 후부터를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워밍업의 절반도 안 되는 셈.
허리통증은 나아질줄을 모르지만, 입덧이 다른 사람들보다 짧게 끝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보내야지.
아. 나 정말 임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