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목이의 하루/엄마의 기록

며칠 일지

바쁘다 바뻐. 일지임.

일요일 점심 때는 자영언니를, 저녁 때는 박군과 업보를 만났다. 임신 이야기를 전하고, 아기도 보고. 자영언니는 아기 침대가 필요하면 자기가 쓰던 걸 가져가라고 했다. 언니네 아이는 정말 예쁘고 잘 생겼다. 웃는 모습도 예쁘고. 하지만 그들 부부의 짐보따리를 보니 한숨이 절로... 박군과 업보는 처녀가 애를 뱄다며 놀렸고, 도대체 결혼은 왜 안하는 거냐며 따지더니, 그래도 결국엔 축하해주었다. 박군은 결혼예물 전에 돌반지부터 해주게 생겼다며 혀를 찼고, 업보는 자기 조카의 물건들을 몰래 가져다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녀석들과 힌 술자리에서 결국 한 놈이 뻗어 잠들고 다른 놈이 룸메에게 까부는 꼴을 보고 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피곤한 일주일의 시작.

월요일에는 룸메의 인터뷰를 했다. 왜 그렇게 졸립던지 하루종일 자고 또 자고를 반복했다. 저녁 때 촬영을 도와주러 깅이 납시셨는데, 그 때도 심지어 자고 있었....;; 둘다 좋지 않은 상태로 인터뷰를 하긴 했으나 그래도 차분히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은근히 카메라를 의식하는 룸메는 그닥 솔직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몇번의 기회가 더 있으리라 믿으며 후후. 자장면이 먹고 싶어서 짱개 시켜먹음. 그리고 미루고 미루던 겨울옷 꺼내기도 했다. 바지는 단 한 벌도 입을 수 없지만 ㅠ 그래도 늘 커다란 상의를 입었던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며...

화요일에는 조산원에 다녀왔다. 어쩌다보니 엄마 아빠 동생까지 따라갔다. 내심 불안했던 모냥인지 다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따라나섰다. 중간에 룸메를 만나 추어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고고싱. 나 혼자 침대에 누워있고 온 가족들이 다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으니 어쩐지 어색. 조산원 원장님도 눈치가 보이는 모양인지 너무 길게 말씀을 하셔서 졸렸다. 조산원에서 얻은 수확이라면, 지금까지 내 뱃속을 울리던 것이 그 녀석의 발길질이 맞다는 확인. 태아답지 않게 쓸쓸한 뒷모습을 하고, 탯줄을 가야금마냥 뜯고 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무료해' 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 했다. 룸메에게 촬영을 맡겼더니 열심히 촬영을 하느라 자기는 초음파 화면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들이라는 확언을 하시던데... 휴. 나 아들 생겼다...;;;;
시내 나온 김에 미루던 캠코더 쇼핑을 해 버렸다. 고민고민고민하던 거에 비해, 사는 건 금방... 룸메도 함께 찍을 것이기에 그가 마음에 들어했던 모델을 골라주었다. 가격대가 좀 있긴 했지만 ㅠ 그래도 인터넷보다 싸서 냉큼 구입.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는데 천원이 모자라서 출금이 안 됐다 ㅋㅋ 천원 입금해서 다시 출금함. 이 짓을 해 본 건 대학교 1학년 이후 근 10년만이다....;; 여하튼 새 카메라가 생겨서 들뜬 나....였으나 너무 피곤해서 9시에 잠들어버렸다.

수요일에는 아침 재활용수거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가, 병원을 좀더 알아볼까 싶어 괜히 엄마커뮤니티에 들어갔다가 급우울해져서 한참을 울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보고 정리를 해 보고 싶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흔드는 거지?
어쨌든 그렇게 우울하게 시작한 바람에 멍하게 있다가 마무리해야 하는 일들 몇 개를 하는데, 시간이 너무너무 오래걸렸다. 집중도가 떨어지는 건지, 머리가 나빠진건지, 무슨 문장 하나 쓰는데 십 분씩 걸려가며 일하다보니 힘들어서 또 잠듬...

오늘은 아침부터 어제 못한 일을 하다가 아점을 먹으며 앙코르드라마인 그사세 마지막회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는 드라마들이 좋다. 자꾸 집에서 뭘 하면 안 되는 것 같아 도서관에 갔는데 서버 이상으로 디지털실은 문을 닫는다고 하여 허탈하게 집으로. 저녁 때는 엄마를 인터뷰했다. 엄마는 카메라가 있으니 내가 자기말을 얌전히 잘 듣는다며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열심히 (한 시간이나) 하고서도 뭔가 미진하다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우리는 둘다 울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쩝. 나를 임신했던 스물세살의 그녀를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고. 에휴. 뭐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집 앞에 온 금 사는 아저씨한테 쪼꼬만 금붙이를 팔아 나와 동생냥에게 참치회를 사주셨다. ㅠ 하지만 간식이랍시고 도너츠를 처묵처묵한 탓에 조금 남기고 온 것이 마음에 몹시 걸린다. 엿튼 맛있게 먹었음.
그리고 여전히 나는 못다한 일을 하고 있다.
아우.
언능 자라며 배를 뻥뻥 차대고 있는 녀석은, 여전히 탯줄을 뜯고 놀고 있을까?